안녕하세요. 만년 구대리입니다.
오늘은 유방암 진단을 처음 받았던 날의 기억을 꺼내보려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날 진료실 풍경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암 진단을 받으러 간 줄도 몰랐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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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크 리본, 일기장, 책, 화병이 놓인 햇살이 비치는 테이블 이미지 |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저는 혼자였습니다.
보통은 가족이나 보호자와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그때의 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몰랐습니다.
“내가 무슨 암이겠어.”
그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심했고, 또 한편으로는 무지했으며, 이상하게도 담담했습니다.
교수님 책상 위에는 작은 접시 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비스킷 몇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 진료 시간이라 누군가 챙겨드린 간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그 비스킷 하나를 집어 들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만해요. 2센치 정도. 그리 크지 않아.”
그 순간 저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깐… 이 말투는… 혹시…?’
그래서 제가 먼저 물었습니다.
“교수님… 저 암이에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암’이라는 단어는 교수님이 아니라, 제 입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교수님은 왜 ‘암’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을까
돌이켜보면 그날 교수님은 끝내 “암입니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상태를 설명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당시에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돌려 말씀하시지?’
혼자 앉아 있는 저를 보며 배려하신 것인지,
아니면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조심스러우셨던 것인지.
그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날 교수님이 남긴 한마디는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만두지 마요. 다들 직장 다니면서 치료해요”
진단 이야기가 끝난 뒤 교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두지 마요. 괜찮아요. 다들 직장 다니면서 치료해요.”
당시의 저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머릿속이 멍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지?’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된 말
수술과 항암 치료를 지나고, 제 병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암 치료는 단순히 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상실감, 우울감이 함께 밀려오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한쪽 유방을 절제한 이후의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무너짐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찾아왔습니다.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말한 “직장 생활”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붙잡아두는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정답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쉬어야 하고, 누군가는 일을 내려놓는 것이 더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복직 후, 9년의 시간
저는 1년간 휴직을 하고 항암과 회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복직 후 다시 9년을 더 근무한 뒤 명예퇴직을 선택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쉬웠던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버거운 날도 많았고,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치는 날도 있었습니다.
복직 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의외로 ‘일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서 컴퓨터로 업무를 보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일이었는데, 치료 이후의 몸으로는 전혀 다른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 제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3일만 버텨보자.”
그리고 3일이 지나면
“3주만 버텨보자.”
3주가 지나면
“3개월만 버텨보자.”
이렇게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스스로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짧은 문장일 뿐이지만,
그때는 그 문장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일상이 나를 지켜준 시간
복직 이후 모든 날이 괜찮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출근 자체가 버거웠고,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완전히 회복해서가 아니라,
무너지는 나를 일상 속에 붙잡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과의 대화,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
그저 평범한 하루의 흐름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치료와 직장 사이에서
치료와 일을 병행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남들과 같은 선택이 아니라,
지금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쉬어야 할 때가 있고,
일이 오히려 삶의 균형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정답은 하나가 아닙니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
지금 돌아보면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몸을 치료하는 것만큼,
마음을 지켜내는 일도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의사의 짧은 한마디가
긴 치료 과정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무리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교수님의 말을 기억합니다.
“그만두지 마요.”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삶을 완전히 끊지 않도록 붙잡아준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문장 덕분에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환우를 위한 당부의 말씀
제가 이곳에 기록하는 모든 내용은 저의 개인적인 치유 경험과 공부한 지식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사람마다 체질이 모두 다르고 현재의 상태 또한 제각각입니다.
치료와 직장 생활의 균형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필요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일을 이어가는 것이 오히려 회복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한 방향을 정답이라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세심히 살피며 충분히 공부하고 본인에게 맞는 선택을 해가시길 바랍니다. 지혜로운 선택이 모여 진정한 치유의 삶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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